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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카페 및 타서머나 사이트에서 퍼온 글들입니다. (원글 주인님께 감사 합니다)
 
작성일 : 13-10-23 09:45
   삼박자 구원 (요한복음 28편 후반부)
 글쓴이 : njsmyrna
    조회 : 719  




그런 면에서 삼박자 구원이라는 것은 정말 잘못된 가르침인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영혼이 잘된 것처럼 범사가 다 잘되어야 하고 몸에 병도 걸리면 안 된다는 그런 식의 논리는 기독교를
오해한 우매한 지도자에 의해 조작되어진 것이지 절대 성경이 이야기 하는 바가 아닌 것입니다.
요한삼서의 그 이야기는 그 요한삼서의 수신자인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에 대한 칭찬과 더불어 그의 영적 강건함을
기원하는 것입니다.

(요삼3-4)
3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 하노라
4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잘 보세요. 사도 요한은 가이오라는 사람이 진리를 듣고 진리를 받아들여 진리 안에서 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심히 기뻐하며
이 편지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 위의 1절과 2절은 그 편지의 인사말인 것입니다.

(요삼1-2)
1 장로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이 인사말을 3절과 4절과 연결시켜서 보세요. 3절과 4절에 의하면 여기서 네 영혼이 잘됨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진리를 듣고 진리를 받아들여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게 바로 네 영혼이 잘된 것입니다.
진리를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가이오가 진리와 전혀 관계없는 자기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았었는데 이제 진리를 받아들인
가이오가 진리를 따라, 다른 말로 하나님의 통치를 따라 그의 삶을 삽니다. 그게 그의 영혼이 잘 된 것입니다.
그러한 것처럼 범사(凡事)가 잘되기를 기원한다는 것은 가이오의 모든 삶이 자신의 욕심을 따라 행하는 삶이 아닌 그렇게
진리를 따라, 하나님의 통치를 따라 사는 삶이되기를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영적 강건함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므로 영적인 강건함까지 기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게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 한다’는 구절의 의미인 것입니다.
이 구절은 만사형통을 이야기하는 구절이 아니라 오히려 만사가 틀어질지라도 너의 범사가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서진리를 좇는
삶이되기를 기도하는 구절인 것입니다.
사업이 망해도 병에 걸려도 네가 하나님의 진리를 좇아 행하게 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영생은 그렇게 범사에 하나님의 진리를 좇아 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삶에 왜 지나치게 많은 돈이 필요하고 그 삶에 왜 높은 지위가 필요하고 그 삶에 왜 멋진 자동차와 큰 집이 필요합니까?
그런데 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러한 세상의 떡들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성도의 부귀영화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는 번영의 신학은 저주받을 사단의 작품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서의 여러분의 번영의 삶에 전혀 쓸모없는 모습으로 여러분을 도우십니다.

(마16:21~23)
21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 하리이다
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 하는도다 하시고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을 함으로 예수님께 칭찬을 받았던 베드로가 주님의 수난 예고를 듣고
주님을 야단치며 절대 그러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22절에서 ‘간하여’라고 번역이 된 헬라어 ‘에피티마오’는 ‘비난하다, 훈계하다, 책망하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그 단어는 예수님이 풍랑을 꾸짖으실 때 쓰인 단어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꾸짖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의 세상 부귀영화와 전혀 상관없이 이 세상에서 죽으셔야 죄인들에게 생명이 주어지게 됨을
설명하시자 베드로가 펄쩍 뛰며 ‘그럼 모든 것을 버리고 당신을 좇아 온 우리는 뭐냐?’고 따지고 든 것입니다.
생명에는 관심이 없고 생존을 위한 떡에만 관심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게 번영의 신학을 주장하는 이들의 모습 아닙니까?
예수는 우리 앞에서 죽으면 안 되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채워주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이죠.
그런데 그러한 자를 가리켜 주님은 ‘사단’이라고 부르십니다. 그렇게 번영의 신학은 마귀의 신학인 것입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좇아 이 땅에서 자신의 죽음으로 진리를 따라 사는 삶을 보여주어야 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계속되는 예수님의 강화를 보세요.

(마16:24~28)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2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주님은 그렇게 이 세상에서의 자신의 유익을 구하기 위해 주님의 죽으심을 만류하는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당신께서 성도들에게
죽는 모습으로, 다른 말로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하는 모습으로 진짜 복을 주시는 것처럼 그 복을 받은 성도 또한 자기를 부인
하는 자신의 죽음으로,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사는 것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고 제 목숨을 잃으면 찾을 것이라’는 말은 자신의 육신의 생명을 위한 세상 것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자는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말인 것입니다.
그러한 세상 것들로부터 자유롭게 된 자들만이 생명을 찾게 된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세상의 떡과 생명의 떡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구원도 주고 세상에서도 잘 먹고 잘 살게 해 주는 기독교는 가짜입니다.
28절을 보시면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다’고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그 구절에서 ‘그 왕권을 가지고’라고 번역이 된 어구는 ‘엔 테 바실레이아 아우투’로 ‘그의 왕국으로’라는 뜻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통치에 순복하는 하나님 나라(교회)가 이 세상에 생기게 되고 그들 안으로
주님께서 들어가 그들을 통치하시는 그 광경을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보게 될 자들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의 특징은 주님의 통치에 순복하여 진리를 좇아 사는 것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십자가를 지고 하나님과 이웃을 목숨걸고 사랑하는 영생으로의 통치를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이 세상에서 바보처럼 사랑하고 바보처럼 용서하며 바보처럼 용납하는 삶을 살며 손해마저도 감수하는 삶을
살아야 옳지요?
그런데 어떻게 교회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세상 사람들보다 더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혈안이 될 수가 있습니까?
기복신앙이 그거 아닙니까?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세상 사람들보다 더 잘나고 싶은 것, 그게 오늘날 번영의 신학을 외치는
이들의 신학 아닌가요?

교회가 그렇게 여전히 저 세상에서도 잘 되고 이 세상에서도 잘 되어야만 한다는 이기적인 모습으로 세상에 비춰지니까 그토록
많은 안티(anti) 기독교인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기독교 박멸이라는 모토아래 만 오천 명의 회원을 확보하며 인터넷에서 활동
하고 있는 반기독교 시민연합(antichrist.or.kr)이 기독교를 개독교라 부르며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그 반기련의 이찬경 회장은 ‘개독교인들이여 안티들을 감동시켜라’라고 공공연히 기독교인들의 이기심을 공격하고 있고 바이블
19금 (禁)지정 촉구를 위한 천만인 서명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열아홉 살 미만은 성경을 못 읽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기독교인들이 안티 기독교인들로부터 이러한 비난을 받고 있습니까?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좇아 세상에서 자신을
부인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지 않고 오히려 다른 이들을 밟아 자신들의 배를 채우고 있는 모습들을 자주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자신을 비워 다른 이들의 유익을 챙기는 영생의 삶이 가능하게 하기위해 생명의 떡으로 이땅에 오신것입니다.
그 영생에 관심을 가지셔야지요. 성도는 자신을 죽이는 것으로 그의 성도된 표지를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 50절을 보시면 예수는 우리에게 생명의 떡이 되셔서 우리를 죽지 않게 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오셨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어디서는 죽어야 한다고 하고 어디서는 죽지 않아야 한다고 하고 조금 헛갈리시지요?
죽지 않아야 하는 것은 우리의 속사람이고 죽어야 하는 것은 우리의 겉 사람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 하고 고백을 한 것은 그의 속사람이 날마다 살아나고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탐욕, 우리의 야망, 우리의 비전 하나님 앞에 모두 내려놓으시고 하나님의 비전과 하나님의 계획이 우리의 삶을채우도록
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단 한 가지 당신의 백성을 새 사람으로 살려 내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40절을 보세요.

(요6:40)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우리 아버지의 뜻은 우리의 삶 속에서 신적 생명인 영생이 뿜어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오히려 여러분의 겉 사람에 속하는 세상의 힘들을 자꾸 놓아가는 연습을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자기 부인이요,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인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의 삶 속에서는 그 전까지 자신의 안위를 위해 쌓아두었던 세상의 힘을 놓는 행위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삭개오가 주님을 만나자 그의 재산을 내 놓은 것 기억하세요? 초대교회 사람들이 자신의 힘을 상징하는 재산을 내 놓은 것을
기억하십니까?
그런데 예수를 부르며 오히려 그러한 세상의 힘들을 채우려 하는 것이 어찌 기독교이겠습니까? 그건 반기독교 시민 연합 같은
안티 기독교인들이 조롱해 마땅한 개독교인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자기들이 해야 할 것은 하나도 하지 않고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자신들의 배만을 위해 살아가고 있으니까 우리가
개독교의 오명(汚名)을 뒤집어쓰는 것 아닙니까?

열아홉 살 미만의 청소년들에게 성경을 금지도서로 지정해야 한다는 반기련의 천만인 서명 란에 어떤 사람이 참 얼굴 뜨거운
댓글을 달았더라고요.
‘걱정 마세요. 개독교인들은 어차피 어른들도 성경을 안 읽어요,
자기들 소원 비느라 그럴 시간이 없어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들의 눈에 기독교인들은 자기들의 정경인 성경조차도 읽지않고 오로지 자신들의 욕심만을 좇아사는 자들로 보여 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해야 할 바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자로 지어져 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읽고 배우고 연구하여 그 말씀의 능력을 힘입어 진리를 좇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영생의 떡을 먹고 영생을 살아내는 성도의 모습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일에 얼마나 열심을 내고 계십니까?
자기들도 읽지 않는 성경을 중국에, 북한에 보내는 일에 열심을 내는 사람들을 보면 참 그런 코미디도 없다 싶어요.
우리 먼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올바로 서서 그 말씀을 좇아 열심히 살아내십시다.

(요한복음 28편 후반부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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